크리스찬과 동성애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


1) 들어가며 : 일반적 견해들


내 생각에 동성애 문제는 다른 정치적, 계급적 소수자 문제와 많이 다르다.

우리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계급적 차이를 가지고 싸울 때에는 외면적 구조, 이를테면 소득이라든가 사는 곳이라든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이러한 지표들을 분석하여 부의 편중을 말하고 가시화된 차별을 근거로 하여 논쟁을 이어갈 수 있다. 나는 100만원 벌지만, 한 달에 1000만원 벌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대충 아는 것이다.

하지만 성적 차별은 구조 이전에 <주관>이 훨씬 개입되어 있다. 혁명을 일으키면 1000만원 버는 사람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으나, 아버지가 안하던 설거지를 하지는 않는다. 고층빌딩은 남성의 페니스를 상징한다고 여성학자가 이 사회의 억압적인 구조를 꼬집어도 나머지 사람들이 듣기에는 개지랄에 그친다.

동성애? 동성애 문제는 이런 <주관>에 몸이라는 객관적 구조가 함께 섞여 있기에 더욱 어렵다. 경제문제는 힘과 물리적 이데올로기의 정치력 싸움 -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이라면, 여자와 남자를 차별하는 것은 성역할에 대한 일상적 인식의 대결이다. 그런데 동성애는 바로 이러한 물리적 싸움과 주관적 대결의 교차점에 놓여 있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몸을 보면서 그의 인식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일은 미운오리가 정말로 오리일 뿐일 때 그를 백조로 불러야 하는지(할 수 있는지)보다 어렵다. 몸이라는 객관적 구조에 대한 성찰과 그 몸에 부여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라는 두 가지 조건은 그래서 세밀한 논쟁을 지연시켜왔다. 특히 우리사회의 경우에 동성애 문제는 희화화되거나, 내 생각에는 결코 과거보다 나아진 것도 없어 보인다. 여자는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씨도 안먹히던 보수주의자가 동성애 논의에서는 구체적인 몸의 정황을 등에 업고 대단히 매력적인 논거를 갖게 되며, 남자들도 설거지를 하라고 주장하던 사람은 동성애 문제에 이르러 왕따가 된다.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얘기를 중단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거가 정당한지에 대한 검증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가 동성애를 특별히 싫어하는 경우에, 비슷한 얘기를 들으면 그 논거가 참 마음에 들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일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곳은 교회이다.


일반적 견해들

혹시 교회에 다닌다면, 목사님에게 동성애가 나쁜지 여쭤보도록 하자. 90%의 목사님은 "동성애는 죄다"라고 대답할 것이며, 그 이유는 "성경에 써 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보기에 기존 교회의 입장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 호모 새끼들. 너네 회개 안하면 지옥 가 임마.
2) 주여, 저 불쌍한 동성애의 죄악에 빠진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제가 그들을 돕고 바른 길로 이끌도록 힘을 주소서.
3) 너무 보수적인 성견해를 가질 필요는 없지. 하지만 성에 관련해서까지 자유주의적으로 생각해서 모든 고삐를 풀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1)과 관련하여는 인터넷에서 대충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대복 목사는 설교에서 성경구절을 주욱 나열한 후, 성경에서 이렇게 명시적으로 죄라고 규정했으므로 "지금까지 한 잘못된 행위를 회개하고 동성애를 하는 죄에서 떠나시기 바란다"고 권유한다.

명지대 교수이자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인 장헌일 장로는 본인의 글에서 동성애차별금지법의 반대 이유로 동성애자는 정상인이 아니다/동성애의 피해자가 확산돼서 사회병리현상이 심화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의 목회자 버드 칼버트 목사는 자신의 설교에서 미국침례교회가 지독히 악취나는 자유주의 교회라면서 동성애 생활방식 때문에 우리사회가 죄로 물들까 염려된다고 하고 있다. 심지어 클린턴 지지자들이 동성애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행음과 간음을 좋은대로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자신은 호모포비아(homophobia,동성애공포증)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기독교인이 싸워야 할 악의 목록에 동성애를 포함시키기도 하고(2007.10.28), 성적 타락의 극치가 바로 동성애라고 발언한 바 있다(2007.10.14).






2)의 입장은 1)과 같이 동성애 대한 부정적 근거는 성경의 텍스트를 인용하되, 즉각적 처벌과 비난보다는 동정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 신문은 2004년 8월 11일자 신문에서 "동성결혼 지지자들에 대해서 무조건 외면하기보다는 치유를 위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선교회에서 성 관련 상담을 많이 하고, 책도 여러권 쓴 금병달 목사는 갓피플에 연재된 <금병달 목사의 SEX 이야기>에서 성경 말씀을 근거로 드는 데 덧붙여, 에이즈 발병률이 높고 새 생명을 만들지도 못하는 동성애는 이성애가 주는 보람과 기쁨과 비교할 때 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쓴 <연애공식>이라는 책을 서점에 가서 보았는데, 혼전성관계나 동성애를 비판하면서 이것들이 성병을 유발하기도 하고, 혼전성관계를 하면 결혼 후 행복하지 않다는 연구사례도 있다면서 실증적인 사례를 자주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책에서 섣부른 정죄보다는 그들을 돌이키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3)의 입장은 교양 있는 신앙인들 사이에서 많이 지지되는 것 같다. 포스트모던시대에서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동성애는 즉각적으로 처단하기에는 망설여지지만, 성(性)을 수퍼마켓처럼 편리하게 선택하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현대철학의 실증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던이즘도 이성을 약화시키고 감성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감성주의는 쾌락주의를 정당화하고 고무시킨다. 특히, 포스트모던이즘은 이성의 해체와 불신을 조장하고 감성주의를 부추기는데, 감성의 규범인 이성을 부정함으로서 아무런 규제장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검열과 규제와 제한의 철폐를 주장하며, 모든 가치와 규범이 힘과 정치의 논리일 뿐이라고 정죄한다. 동성애나 변태적 성을 옹호하는 성정치학을 주장한 푸코도 이에 속한다. 결과적으로, 현대사회는 모든 규범을 점차 철폐하고 아무 규범도 없는 무윤리적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이정석, "고난에 대한 서구적 이해" 중


요약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보통 동성애가 1) 지옥불에 떨어질 형벌이기 때문에 죽도록 밉고 무섭거나, 2) 또는 동성애자를 위해 밤낮으로 울면서 기도할만큼 착하거나, 3) 판단은 살짝 유보하면서도 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개방된 요즘의 세태가 비정상적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1)과 2)의 의견은 사실 감정에 호소할 때가 많다. 사랑의 교회 오 목사의 경우도 설교비평을 통해 자신의 "전(前)경험"으로 동성애를 정죄한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동성애가 성병을 유발하므로 비도덕적이라는 주장이나 동성애자들은 마음대로 섹스하고 싶어서 비정상적인 주장을 한다는 지적은 유치하기까지 하다.

조금 더 침착한 태도로 동성애에 접근하는 보수적 견해 몇 가지를 소개한다.

다음글 : 2) 보수주의 : 루이스 스메디스와 낸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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