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과 동성애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
2) 보수주의 : 루이스 스메디스와 낸시의 이야기
C.S 루이스는 그의 책 <네 가지 사랑Four Loves> 에서 우정이 동성애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얘기는 중요한데, 왜냐하면 우리가 이 주장을 인정하는 순간 동성애 행위(activity)뿐만 아니라 단순히 동성애적 성향(condition)까지도 그 어떤 우정의 범주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주장은 불가능해지는 것 아닌가?
Although Scripture speaks of homosexual activity, it does not speak of a homosexual condition. It is this activity that is forbidden and labeled sinful.C.S 루이스와 Nancy 모두 기독교인이면서 동성애적 기질을 발견한 동성애자가 초기에 이러한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다. 다만 동성애가 질병이나 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전근대적인 인식은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C.S 루이스의 경우에 성경이 일반적으로 사회타락의 징조로 동성애를 기술하고 있었던 것에 주목하는 편이며,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최소한 긍정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성경이 동성애 행위에 관해서는 말하지만, 동성애 기질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금지하고 죄악시한 것은 행위이다.
Nancy, Homosexual Struggle, InterVarisity, 1978.
실제로, <네 가지 사랑>에서 엿보이는 C.S 루이스의 동성애에 대한 의견은 부정에 가깝다.
"...all those hairy old toughs of centurions in Tacitus, clinging to one another and begging for last kisses when the legion was broken up...all pansies? If you can beleive it you can believe anything."
"...타시투스의 저술에 나오는 그 모든 털복숭이의 터프한 사내들, 서로 의지하고 군대가 파괴되었을 때 서로 붙어서 키스를 해달라고 하던 .. 그네들이 모두 동성애자였고요? 그걸 믿을 수 있다면, 세상에 못 믿을 게 없을 겁니다."
요컨대, 전통적으로 주류신학에서는 동성애 문제에 관해서 문화적 상대주의를 적용하는 것에 조심스럽다. 당시 동성애가 훨씬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우리가 이성애로 읽는 수많은 장면들이 사실은 동성애적 상황이며,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악시한다고 우리가 지적하는 수많은 구절에 대해서도 사실 성경은 직접적으로 정죄하지 않는다고 편리하게 주장하면서 현대의 동성애 붐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모호한 우정의 경계 안에 동성애자를 포함시켜야 할까? C.S 루이스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이해라고 부를만한 관점은 무엇일까? 풀러 신학교 교수인 루이스 스메디스(Lewis B. Smedes)는 자신의 저서 <크리스천의 성>에서 간략하게 다음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입장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1) 동성애는 단순히 정상적인 성의 한 형태이다. 2) 동성애는 변태이다.
그는 이어서 만약 우리가 두 번째 입장을 선택해서, 동성애자를 강제로라도 저지시키고자 한다면 성경을 읽어봐야 하는데, 성경의 구약과 신약에는 일관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서술이 많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바울에 따르면(롬 1:26-27), "순리에 역행"하기 때문에 동성애적 타락을 용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스메디스는 이어서, 주의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이성애자들도 "동성애자는 자연의 전체 질서를 역행했기 때문에 짐승만도 못하게 된다"는 칼빈(Calvin)의 말에 안도감을 느낀다.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 바울이 남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 또한 순리가 아니라고 믿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전 11:14)
- 루이스 스메디스, 크리스천의 성, 두란노, 68쪽.
따라서, 순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그냥 싫으니까 성경에서 구절 찾아서 "거 봐 여기 있잖아"라고 말하기에는 이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는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스메디스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성기를 사용하는 성 관계는 인간으로서 서로의 심원함과 신비를 공유하는 연합의 한 요소일 뿐이다. 이 질문은 어떤 성 이론에 의해 비약적인 진전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는 종종 깊은 인격적인 연합을 이룬 가운데 서로 관계를 맺는 듯 하며, 모든 동성애적 관계가 상대를 구하기 위해 게이 바를 전전하는 사람들간의 급작스런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루이스 스메디스, 같은 책, 6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스메디스가 동성애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바울에 동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에 따르면 개인의 성적인 기호보다 더 중요한 판단 기준과 규범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의 성이 그 사람 성격을 총체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성을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표현하는가? 셋째, 인간의 성 중 가장 높은 단계의 것은 이성애이다. 그는 바울이 동성애에 관해서 말할 때 성경이 전제하는 이 세 가지를 "배후에" 깔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도 인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은 낮다. 동성애가 사람으로 하여금 인격적인 삶의 교향곡 내에서 자신을 통합시키는 데 큰 문제를 야기하고, 종종 은밀하고 불안정하며 때론 보기 흉한 상황들 속에서 성적 만족을 추구해야 한다면 분명히 동성애는 '순리가 아닌 것'이거나 비정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만하지 않게, 동성애자들에게 다음을 충고할 필요가 있다.
1. 자신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용감히 직면할 것. "괜찮아, 게이로서 계속 지내자"하는 태도를 취할 수 없다.
2. 죄책감의 부담을 거부할 것.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짐에서 벗어나서 자기 증오를 극복할 것.
3. 동성애적 행위의 책임을 인식할 것.
4.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믿을 것.
5. 변화를 찾을 것. 성적 지향성(orientation)을 변화시키는 데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간증은 매우 많음.
6. 변화할 수 없을 경우, 대안으로 독신을 생각해볼 것. 도움을 얻을 것.
7. 독신도 힘들 경우에는 모든 종류의 착취(exploitation), 유혹, 그리고 젊은이들을 동성애로 끌어들이는 일을 하지 말 것. 성 이외의 자기 삶의 부분을 개발하여 균형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할 것.
2. 죄책감의 부담을 거부할 것.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짐에서 벗어나서 자기 증오를 극복할 것.
3. 동성애적 행위의 책임을 인식할 것.
4.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믿을 것.
5. 변화를 찾을 것. 성적 지향성(orientation)을 변화시키는 데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간증은 매우 많음.
6. 변화할 수 없을 경우, 대안으로 독신을 생각해볼 것. 도움을 얻을 것.
7. 독신도 힘들 경우에는 모든 종류의 착취(exploitation), 유혹, 그리고 젊은이들을 동성애로 끌어들이는 일을 하지 말 것. 성 이외의 자기 삶의 부분을 개발하여 균형 있는 삶을 위해 노력할 것.
요약하면, 스메디스는 동성애자가 되어보지 않고서 동성애자의 도덕성을 명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동성애자에 관해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성경, 특히 바울의 이야기에서 '순리적'이라고 표현한 것과 동성애적 성향(condition)의 관계를 생각해볼 때 동성애가 순리적이 아니라는 인식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동성애 성향만을 가지고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에서 개인이 성적으로 자신의 인격을 성장시키고 통합적으로 삶을 영위하여 행복하게 지내게 하는 게 큰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다소 현대적이고 실용적이며 분석철학적인 미국신학 분위기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동성애적 행위를 도덕적으로 칭찬할 수 없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의 생활을 위한 도덕을 개발하자. 하지만 여전히 동성애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물론 전투적인 호모포비아에서 한 발 물러선 이런 주장도 많은 반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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