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심지어 이미지를 튜닝(tuning up)해 준다는 업체에 아이들을 맡겨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어한다. 본래 "tune"이라는 말은 20세기초 엔진부품 조작과 관련하여 동사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이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엔진이 돌아가지 않을 때에 그 부품을 조작하여 "튜닝"하여 바로잡는다. 반면 사람은 달리지 않을 때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달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엔진에게는 의무가 있으나, 사람에게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기계의 기능성(functionality)에 대하여 만든 조어(coinage)를 사람을 목적어로 하여 타동사로 쓰는 데에 우리는 너무 익숙하다.
특히 아이들을 튜닝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은 끔찍하다. 서울의 어떤 곳에서는 토마스 기차를 타는 시간이 오면 부모들이 가볍게 등을 떠밀면서 전기 기차에 아이들을 태운 뒤에 그 공백으로 인한 여가를 카라멜 마끼야토와 함께 수다로 즐기는 데에 시간당 이만오천원을 지불한다. 교육과 먹는 일이 완벽히 이분화되는 이런 공간의 방정식 대신에, 햇살이 잘 들어오는 흙바닥 위에서 무질서하게 둘러 앉아 어떤 아이는 안아주고 어떤 아이는 서로에게 기대어 있지만 토마스 기차 대신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시간 속에 있고 싶다.
나는 이 사진이 너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