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인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는데 친구처럼 안아주며 인사한다. 사제지간이었던 애가 대학 가고 "형이라고 부른다"며 선생에게 개긴다. 책상 위에는 누가 누구에게 주는 백합 꽃다발이 놓여 있고, 집주인은 며칠 전 도둑이 들었는데 쓰지 않은 화장품 하나와 100원짜리 동전 22 개만 훔쳐갈 정도로 자신은 가난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배가 고프니 장을 보기로 하고 돈을 걷는다. 버스카드밖에 없다고 배를 째도 미안하지 않고 누군가는 알아서 그를 위해 더 낸다. 집 앞 재래시장을 돌며 아줌마에게 닭을 몇마리 사야 하냐고 묻는다. 사이다를 좋아하는 애를 위해 마트에 들렸다가 시식코너를 점령한다. FTA 덕분에 칠레산 키위를 천원에 네 개 사고 좋아했는데 제프리 키위가 더 맛있다는 얘기를 옆집 과일 사장에게 듣고 웃겨 죽는다. 집에 돌아와서 유통기한이 지난 드레싱을 뿌린 샐러드와 토마토를 넣은 닭볶음탕을 완성한 후 열렬히 박수친다. 정토회 친구가 끓여준 짜이 속의 벌레를 덜어내고 후르륵후르륵 마신다. Once 앨범의 곡 하나와, 김광석 노래 하나를 듣고 다들 얼굴이 멍해서 앉아있다가 셔틀콕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사진기 앞에서 웃어본다. 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간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잘 뛰고, 잘 걷고, 잘 웃으며 논다. 배드민턴 채와 공 하나로 어두워질 때까지 버티다가 경비 아저씨의 손전등 불빛을 보고서야 엉덩이를 턴다. 먼저 가는 사람들 바래다주러 지하철역까지 슬리퍼 끌고 다들 나와서 또 손잡고 잘 가라고, 잘 살라고, 또 보자고, 안녕 안녕~ 인사했다.
사뿐하고 진실하여 집에 돌아온 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이 행복을 목적으로 정확히 이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럽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사귀기 위해 운동회를 열고, 운동회를 열기 위해 소화시키기용 노래를 틀어 마음을 정화한다며 따라 부르라고 하고, 굳이 벌레를 넣어 짜이를 마시기 위해 이교도의 집을 방문하고, 굳이 현대 식품공업이 정한 유통기한을 무시해보는 일탈을 위해 드레싱을 묵히고, FTA에 반대하기 위해 마트를 돌아 재래시장의 불쌍한 할머니에게 재료를 사러 가고, 버스카드의 잔액과 현금은 1:1 교환가치가 있다고 회칙으로 정하고, 한 달에 식대를 1/n로 계산하여 회계가 수금해야 하고, 그럴 회계를 정해야 하고,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고, 2천2백원 동전이나 쓰지 않는 화장품을 건네기에는 서로 어색한 선물교환행사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려하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는 꽃다발을 마련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가?
살아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배워서 살려고 하는 것. 이제 뭐가 내 문제인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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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 쓰레기통처럼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 풀 하나 올랐다. 나는 너무 깨끗하지는 않은 곳에서 너무 화려하지는 않은 풀 하나 피우면서 살고 싶다. 풀이 소박해도 화분이 가난하지 않거나, 화분이 거지같다는 이유로 그저 천박할 뿐 생명이 없는 것.. 둘 다 싫다.
(2009년 9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