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과 종교적 치유에 대해 얘기 나눈 것을 생각나는대로 요약
Q. 어느 교회에 가서 병이 나았다는 주장을 신뢰해야 하나?
A. 나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병의 치유는 확률의 문제이다. 많은 병은 현대 의학에 의해 증상 개선이 가능하다. 그리고 몇 퍼센트는 민간 요법으로, 그리고 몇 퍼센트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연적으로 치유되거나 우리가 잘 모르는 경로로 낫기도 한다. 따라서 종교집회에서의 치유도 확률의 문제이다. 병원에 가서 실패할 확률보다 종교집회에서 병에 낫지 못할 확률이 높다. 온누리교회를 위시하여 소위 오순절파 대형 종교집회에서 일어나는 '병 나음의 기적'에 관하여 성공율 그래프를 그려보면 참여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절대적으로 병 나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되는 양상을 띠지만 참여자 대비 치유되는 확률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나은 몇 사례 때문에 더욱 구름같이 모여들고, 확률은 떨어지지만 또 몇 사례가 나오면 발걸음은 끊기지 않는다.
Q. 다른 종교도 병 나았다는 얘기는 많이 한다.
A. 병의 치유는 많은 종교에서 단골로 신자 모으는 데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지금도 어떤 절에 가면 병 낫는다는 얘기가 있고, 실제로 낫는 사람들이 있다. 암 같은 경우도 원래 조기에는 병원에서 종양을 진단할 수 있지만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하더라. 우연한 시기가 겹친 경우, 그는 최종적으로 종양이 사라진 시점에 어느 종교단체에 있었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을 하게 될 것이다.
Q. 그럼 기독교 신앙에서 병 낫게 해주는 건 무조건 사이비이고 잘못된 것인가?
A. 에스겔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 에스겔서 34장 4절 (표준새번역)
즉, 성직자는 자신이 담당하는 공동체의 사람이 아플 때 그 아픈 것을 돌봐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하다면 돈을 모아서 병원에 보내주어야 하고, 침이나 뜸이 효과가 있다면 열심으로 알아본 뒤 민간요법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또한 그를 위해서 기도하여 병 낫기를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다.
Q.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병 나으라고 기도해주는 대형 집회는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지 않나?
A. 이것은 욕망의 문제이다. 블룸하르트는 바르트를 비롯하여 독일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개신교 목사인데, 그는 사실 병 낫게 하는 은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실제로 시설을 차리고 기도하고 치료해서 많은 사람들을 낫게 했는데, 사람들이 이 소문을 듣고 지나치게 많이 몰려오자 병 낫는 것을 신앙적 삶보다 중요하게 여기도록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하여 오히려 시설을 폐쇄하고 자신은 노동자 운동에 뛰어들어버렸다. 이 태도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병 낫게 해주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아픈 사람이 아프더라도 인간답게 지낼 수 있고 전혀 소외되거나 정치적으로 압박받지 않는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
<1리터의 눈물>의 저자는 전신마비를 두고 인생을 누리는 데 있어 "약간 불편한 일"이라 칭하였다. 신앙은 병을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병자와 장애인들이 비정상적인 것으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하는 것에 가깝다. 이런 인식 때문에 블룸하르트도 병 낫게 하는 일을 오히려 그만두고 정치적인 행동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Q. 병에 걸려보지 않거나 불편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제로 얼마나 '치유'가 간절한지 모를 것이다. 오히려 실제적인 치유를 위해 교회가 더 영적으로 노력하여 이런 종교집회를 확산해야 하지 않을까?
A. 오늘날 한국인들은 30억 정도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다. 그러나 30억은 정말 행복을 낳을까? 건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건강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과 신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명문대 가는 것과 신앙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만약 나음받는 일 자체가 신앙과 상관이 있다면, 거꾸로 낫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어딘가 신앙이 부족한 것인가? 나아서 신앙에 근접했다고 여긴다면,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종합영양제를 챙겨 먹다가 평온하게 죽는 많은 부자들은 가장 신앙적인 사람들일까? 지친 마음으로 어서 빨리 낫고자 하는 아픈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과 건강한 신앙은 관계가 없거나 적어도 거리가 멀 확률이 크다.
어떤 사람은 사도 바울이 간질이 있었다고 하고, 대인공포증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는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대신 말보다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편지에 남겼다. 성서에는 고침받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수의 병신, 대인기피증 환자, 심리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찌질이들이 있는 그대로 등장하여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는데(예수 또한 가난하고 반역적 언행을 일삼는 위험인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신체적, 재정적 결핍을 해결하는 데 주로 신앙의 이유를 갖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병원 대신 다른 종류의 의료서비스업 혹은 비즈니스 기관을 방문하는 것이지, 신앙과는 무관하다.
(2009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