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애들이 "우리도 먹고살려고 이렇게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 하길래, "그냥 그 이유로만?"이라고 되물었더니, "그럼 또 무슨?"이라고 대답했다. 학교에서는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사라마구의 디스토피아 마냥, 비감염자가 감염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며 확률의 문제를 책임의 문제와 혼동하는 꼬라지가 가관이다. 물론 객관적 위협은 존재하고, 질병은 부정적인 것이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사례를 이어붙이면, 결국 1) 더럽게 재수없는 일과 2) 더럽게 재수없는 어떤 타인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 광장을 최대한 기피하면서 가장 안전한 독방에서 스스로를 검역한 채 돈 먹고 돈 먹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먹고사니즘 정신이 발견된다. 제발 그러지 마라. 공포는 공포가 다가왔을 때, 반응하면서 느끼는 것이어야 한다. 보이지도 않는 공포와 아직 오지도 않은 공포를 이야기한 사람들, 대처 수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 내 교실의 10대들에게까지 뻗어있는 ... 공포의 관점으로 공포와 상관없는 다른 일의 성격을 살피는 버릇은 어디서 배우는 것이냐? 그런 버릇 개한테도 못 줘서, 금강산댐에 갖다 바치고, 김제동이나 윤도현이 그래도 뭔가 잘못이 있으니 내려왔겠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고, 그래도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태어났었더랬다. 10대가 매일 자리에 앉아서 전염병 걸릴까, 나 밥 안 줄까, 휴교는 언제 하나.. 따위의 생각 이상을 하지 못할 때, 너네가 만들 세상은 지금 너희가 보는 기성과 전혀 다르지 않을 모습으로 다만 앞에 놓여있을 뿐이 아니더냐. 윌리엄 홀처럼 전염병 있는데 찾아다니면서 만지고 부비대고 치료하다가 3년만에 객사하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이제 공포가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였는지 다 까먹고 그저 플루라면 다들 방사선 낙진이라도 맞은 표정들로 난리법석인 걸 보고 있으면 지난 주말 1박2일 못보게 했다고 수십분을 징징대던 조카가 생각나서 한 대 줘패고 싶다만은... 작은 공포조차 뒈질 각오로 마주할 깜냥이 없다면, 어느 날 너가 마주하게 되는 건 정확히 네가 싫어하던 아빠의 모습이라고 말하면 너무 마초적일까? 글쎄, 오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
The Father from fla on Vimeo.
* 영상은 망다방 블로그에서 보고 퍼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