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남 터미널, 0시 30분 심야로 통영행 버스에 올라, 새벽 5시께 도착.
터미널에서 너무 졸려서 새우잠 자다가 일어나서 여객터미널로 이동. 소매물도 아침 7시 배 있었는데 좀 더 일찍 올 걸 후회.
터미널에서 너무 졸려서 새우잠 자다가 일어나서 여객터미널로 이동. 소매물도 아침 7시 배 있었는데 좀 더 일찍 올 걸 후회.
첫 업힐에서 체인 풀어져서 혼자 낑낑 ..
2.
거지같은 여자애들 다섯이 너덜한 깃발을 들고, 얼굴이 땀으로 홍수가 되어 걷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부산에서 왔다면서, 대안학교 우다다(우리는 다 다르다)에서 도보체험을 떠난 학생들이란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부산에서 왔다면서, 대안학교 우다다(우리는 다 다르다)에서 도보체험을 떠난 학생들이란다.
개중 가장 큰 아이가 스물. 나머지는 십대였는데 손에 박카스 하나씩을 쥐어주자, 시장이 떠나가라 큰소리로 아프지 말고 조심히 잘 가라고, 화이팅을 연신 외쳐댔다. 눈물 찔끔. 책자도 받았다. 나중에 쉬면서 읽었는데, 우다다는 부산에 있는 미인가 대안학교로 비교적 소규모로 운영되지만, 나름 재밌고 창의적인 커리큘럼이 많은 듯 했다. 활짝 웃던 그녀들의 성장 일기에 나도 한 페이지가 되어 기쁘다.
이후 동피랑 마을로 들어갔다. (우연히 그냥 갔다.)
그림 많은 곳에는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 많았는데.. 나는 그냥 그림 없는 골목들.. 몸 하나 지나가기 힘든 곳들 걸어다니면서 놀았다.
이불 터는 할머니.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걱정될만큼 초라한 집구석 한 켠에 소중하게 가꾸는 화분들.
집집마다 하나의 집이 하나의 집 옥상을 그대로 내려다보며 자리한 계단형 빈민가. 옥상마다 바람에 날리는 가족들의 팬티.
3.
자전거 여객터미널에 묶어두고, 소매물도행 배에 올랐다.
예전에 소매물도에 관해 들었을 때, 아주 허름한 민박도 예약을 해야 겨우 잘 수 있고... 밤하늘 별이 그렇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랬지. 물도 아껴쓰고, 화장실도 재래식이라고. 그래서 빨래할 게 있으면 미안해하면서 민박집 할머니와 지하수 받은 통에 빨랫감을 넣고 함께 밟으며 깔깔깔 웃었다는 이야기.
이제 소매물도에 그런 풍경 없다. 배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사람들이 가는 곳은 칠성사이다 자판기.
배가 조그만 섬에 가까워지면서 섬 전면의 약 20%를 차지하는 듯한 거대한 목조 현대식 펜션 건물이 지갑을 든 관광객을 반긴다. 이 섬 사람들은 원래 지하수도 모자르고 전기도 모자라서 아껴쓰고 아껴썼지만, 관광객들이 에어컨과 선풍기와 칠성사이다와 샤워와 냉커피를 요구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사람들은 등대섬 사진을 찍으러 한바퀴 슬렁슬렁 돌고와서 배가 올 때까지 아메리카노를 쪽쪽 빤다.
난 사람들 없는 숲을 통과해서 혼자 해변에서 게 잡으면서 놀았다...
게는 엄청 빠르다. (응?)
4.
일몰이 멋지다는 달아공원. 안내지에 있는 거 보고 가보기로 결심.
자전거 타고 올라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진짜다..)
도착하니 역시 달아공원에도 카페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데이트 온 것 같은 남녀들이 또 아메리카노를 빨면서 에어컨 잘 나오는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때맞춰 전망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수 하나 사서 마시면서 전망대에 미리 올라가서 멍하니 지려고 준비하는 해를 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멘프로토 삼각대와 캐논 5D, 니콘 d2x 등을 들고 등장했다.
렌즈는 70-200 F2.8is 정도는 다들 기본인 분위기.
난간에 기대있는내 양 옆과 앞을 촘촘히 채운 할머니들의 엉덩이 사이로 수다가 피어나기 시작.
is렌즈 모터도 안 끄고 삼각대에 올려놓은 후, iso를 400에 놓고, 조리개를 2.8에 놓고 찍는 할머니.
이따 낙조 실루엣 잘 나오려면 노출을 올리는 건지 내리는 건지 서로 궁금해들 하시며.
난 당신들이 비싼 카메라 사용법을 몰라서 싫은 게 아니라, 그다지 사진 찍는 시간 가운데 기뻐하시는 것 같지 않아서 슬펐다. 지는 해를 찍으면 누가 돈을 주나? 늦게 도착한 친구 할머니가 자리를 못잡아 당황스러워하는 동안 내 옆의 할머니들은 제 장비를 쓰다듬으며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태도로 "안 보이니까 내 앞에서는 비켜"를 다들 연발.
200만원짜리 카메라와 150만원짜리 렌즈로 해를 사려 온 건지, 지는 해에게서 뭐라도 한 수 배우려 온 건지.. 꼴불견.
그래서 내가 풍경사진 명소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는다. 우포늪에 새벽에 가봐라. 늪이 주는 적막은 커녕, 인간 군상들의 한 건 잡으려는 아웅거림과 분주함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좋은 장면의 찰나를 침흘리며 낚아채려고만하지.. 그 절정이 오기까지의 긴장을 감사하거나.. 기다리는 시간에 닥치고 정숙히 앉아있지를 않는다.
여튼 그 날 해는 결국 구름에 가려 얼굴을 허락치 않았다. 쌤통이다.
5.
달아공원 아래 달아마을에서 민박.
그 마을 이름을 모르겠네.. 수산과학원? 아래 있는 마을인데 정말정말 이쁘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신 것 같았고, 서울 노량진이 고향이지만 남편의 고향인 그 마을에 내려와 여생을 보내고 계셨다.
혼자 사는 집이 어찌나 청소가 잘 되어 있는지..
마을에 방학이라 놀러온 마을 수퍼집의 손자 손녀 애기들이랑 공놀이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퍼에서 맥주랑 육포를 사서 육포 거진 반을 마을 개랑 나눠먹었다. 야박한 개주인. 연탄창고 안에서 시작된 개줄이 겨우겨우 개 앞발까지만 밖으로 나오게 묶어두었다. 자신의 개에게 편안히 뒷발까지 구역을 이탈하여 아이들의 공놀이를 구경할 자유를 주지 않는 그 주인의 심성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개는 숨가쁜 표정으로 문 밖으로 고개를 내어 육포를 씹었다.
6.
다음날 완전 늦잠. 수산과학관?에 올랐다. 할머니가 차가운 보리차를 자전거 물병에 채워주셨다.
황조롱이? 매? 같은 녀석이 하늘에 멋진 날개를 펴고 독수리오형제에 나오는 새소리를 내고 있었다(응?).
나무 화석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었는데, 별로 관심 없어서 바다만 보다가 다시 내려왔다.
여기서부터 산양 일주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는데..
내 평생 달려본 도로 중에 정말 최고 예쁜 바닷가 도로였다. ㅠㅠ ...
남자 애 둘이서 낚시를 하고 있어서 말 걸어보려했는데, 다가가는 도중에 철수하더라는.. ;;
7.
동쪽 해변은 군데군데 이쁘긴 하지만.. 업힐 다운힐이 반복되어서 쉽지 않았다.. (업힐 너무 싫어) ㅠㅠ
여튼 시내 쪽으로 다시 나와 냉면 하나 사먹고.. 냉면집에서 대충 시간을 보며 사량도에 가보기로 결심.
가오치 선착장에 17시까지 도착해서 사량도에 자전거와 함께 갈 계획을 잡았다.
시간을 단축해서 통영시내로 갈까 하다가.. 평인 일주로 쪽으로 돌아가도 좀 서두르면 될 것 같아 방향을 바꾸었는데..
이런.. 확장공사 중이라 자갈밭을 28cm 타이어로 달리자니 죽을 맛.
먼지만 잔뜩 마시고 도산면 사무소 정도까지 왔을 때 ... 펑크난 걸 깨달았다.
이놈의 타이어, MTB랑 달리 죽어도 안 빠진다. 튜브 교체하고 90 psi까지 넣어야 하는데..
60도 힘들어서 손펌프로 낑낑대다가 손에 기름 다 묻히고 다시 출발. 시간을 너무 많이 까먹었...
사량도 선착장에 17시 5분에 도착. 아저씨 막배 떠났어요? 네 방금요. 허탈. 사량도 민박집에서 노을보면서 음악 들으려 했는데..
앗 그러고보니 자전거 휴대용 스피커가 찍찍이에서 떨어져있다. ㅠㅠ .. 근데 내 장갑은 어디갔지?
멍하니 바다보면서 애들 킥보드 타는 거 구경.
배고파서 엄마손 파이 매점에서 사먹었는데 먹다보니 유통기한 한 달 지난 거임.
8.
날은 어두워가고,
민박을 아무데서나 하느냐, 지름길 또는 왔던 길로 도산면 사무소 쪽으로 다시 나가느냐..
고민하다가, 어처구니 없게 제일 먼 길로 해변을 따라 돌기로 결정. (왜?)
해는 지고..해변을 따라 돌면 석양+바다라도 볼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산에 가려서 하나도 안 보이고..
업힐만 계속 나오고, 배고프고, 몽쉘통통은 너무 달아서 먹기 싫고.. 뭐 그러다가
통영 시내로 다시 오니 밤 10시였다.
배고픈데, 회집, 고기집만 있어서 혼자 밥먹을 데가 참..
해물탕 집에 들어가서 신발 다 벗었는데, 밥 없단다.
통영대교 야경이 멋있다길래 가봤지만, 절전하려는지 어둑어둑하다.
여객터미널 앞 꿀단지라는 꿀빵 집에서 빵을 좀 샀는데(나중에 먹을 생각), 할머니가 자전거 타고 돌아댕기느냐고 갑자기 손녀딸 시켜서 냉장고에서 호박식혜 가져오라시더니, 콸콸콸 두 잔을 내리 따라주신다. 진짜 내가 좀 불쌍해보였는가..
결국 그냥 시내로 가기로 ... (정말 밥 먹고 싶어서..)
근데 이미 10시라 식당이 다 닫아가지구..
김밥천국에서 만두 사 먹음. 아줌마 물만두 시켰는데 왜 .. 찐만두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귀찮..)
시내에서 무슨 풋풋한 민박..이랴..
찜질방에선 책보고 충전하고 글을 못 쓰니, 모텔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시내 방황.
근데 모텔들이 다 러브모텔 분위기. 자전거 주차할 수 있는 곳 찾아 용감하게 한 군데 들어가 방주세요.
"여기 무선 인터넷 되요?" 물었더니, 혼자세요? 네 혼잔데요. 인터넷 꼭 해야 되요? .. 아니 꼭 해야 되는 건..
아 그럼 4층에 제일 끝 방으로 드려라. 아저씨 그렇다고 전화도 안 터지는 방을 주시다니.
방에 휴지랑 재털이랑 벽에 온통 티켓다방 전화번호 도배. 여기 미군부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폰으로 통영 티켓다방 검색했더니, 통영과 진주는 가출 청소년들이 자주 팔려오는 곳이라고(어떻게 매년 통영 인신매매범 잡힌 기사가 있을 수 있지?) 사실 오입질이야 도농을 가리지 않겠으나, 이렇게 맑은 바다 마을, 김밥 이름도 충무인 곳에서 다방 여자들에게 멸치 잡아 번 돈을 열심히 바치고 있을 소비자?들을 생각하니 씁쓸. 언제나 욕망이 문제다. 멸치 어획량이나 관광객 수가 문제가 아니라.
9.
침대에서 잘 자고, 아침에 나오니.. 피곤해서 내일 가려던 일정을 바꿔서 그냥 서울에 갈까 고민.
다시 여객 터미널 쪽으로 가서 욕지도나 다른 섬에 가볼 생각도 들었지만, 욕지도 일주를 할 체력이 없어서 포기.
게다가 생각해보니 이제 바다가 다 그 바다... ㅎㅎㅎ
충무김밥집에 가서 처음으로 충무김밥 먹음. 아줌마가 다 먹었냐고 계속 물어봐서 체하는 줄 알았다. 장사 잘된다 이거지..
도로에 차가 너무너무 많아지고, 여자들 핫팬츠 차림을 보니 이거슨 서울 사람들의 주말 나들이... 아 오늘 토요일이구나.
목요일 밤만 해도 괜찮은 바닷가였는데, 갑자기 싫어져서 집에 가기로 결정.
10.
터미널에서 차표 끊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데,
남자 둘이 접근. 혹시 여기도 도를 아십니까?
통영시에서 추진중인 해상 케이블카(응? 해상?)에 관한 설문조사 해달란다.
이런, 그림을 보아하니 바다 위를 케이블카로 이동하며 배 안 타고 하늘에서 바다를 보며 편하게 사람 몸뚱이를 날라주겠다는 발상. 그 아래에는 미래형 고부가가치사업 창출이라고 크게 썼다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에 체크하고 빈칸에 "케이블카 계획 철회하라!"라고 크게 써서 돌려주었다.
모대학 관광학과에 다닌다는 그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로 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케이블카의 자연훼손 측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대답.
"근데, 할머니들 산에 올라가면 힘드시잖아요. 케이블카 타면 힘도 안 들고, 할머니들도 좋은 풍경 감상하시니까 이게 복지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이거슨 새로운 복지의 정의?
내 할머니 죽기 전에 돈으로 높이를 구입하여 하늘에서 내려뵈는 바다를 선사하는 것과
여관방에서 돈으로 미성년자를 구입하는 것의 공통점은
둘 다 고부가가치사업이라는 것.
둘 다 나눔과 보존보다는 내 몸덩어리와 내 가족의 자고 싶고 먹고 싶고 보고 싶은 욕망만 고려할 따름이라는 것.
그래서 그 둘 모두 그 안에
다음 세대에 남겨주어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다는 것.
통영시내에는 교통질서와 쓰레기 안 버리기 등 기초질서/준법으로 명품 관광도시를 만들자는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시는 케이블카로 로또 맞을 생각하고, 가난한 어부들은 여관에서 예쁘고 어린 여자 만날 생각하면서
오늘도 좋은 꿈 꾸세요.
언제부턴가 할머니와 빨래를 밟으며 별을 볼 수 있는 공간을 점점 줄여가는 것이 '가치창출'이 되었다.
좀 내비두면 안되겠니?
11.
아 무슨 여행기인데.. 사진이 없느냐.. ?
오늘 센트럴시티에 잠시 세워둔 자전거에서 파란 바다와 아이들과 할머니 얼굴이 담겨있는 1시간 분량 mp4 동영상 sd 카드와 함께 삼성wb1000 카메라를 들고 가신 분 행복하세요.
내가 페달링해서 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확인한 바다를 그대에게 드립니다.
한 번은 재생해보겠지. 야동은 없다. 선물이다.
기록.
거리 : 159.3 km
평속 : 14.9 km/h
최고속도 : 78.5km/h (내가 이렇게 달리고 있는 줄 몰랐음)
(2010년 7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