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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렇게 명쾌하고 단순한 독일어... 가장 섬세한 것에 있어서 감상적이 되지 않고 가장 강대한 것에 임해서 무기력해 지지 않고 자기의 확신한 바를 말함에 있어서 과장하지 않고, 말과 대상을 극단히 단순화하거나 복잡화하는 일도 없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1943년 7월 25일", <옥중서간>(대한기독교서회), 55쪽
 

 

디트리히 본회퍼는 감옥에 갇혀서도 자신의 모국어에 대해 강렬한 자긍심을 표출한다.독일어─그 위대한 언어는 노래하는 프랑스어나 재잘거리는 듯한 스페인어에 비해 매우 둔탁하다. 그러므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봄이나 여름이라면 독일어는 겨울이다. 채도 낮은 회색이자 오래 묵은 우물이다.

 

 

영어가 패밀리 레스토랑의 날씬한 써빙걸이라면 독일어는 시골집 할머니이다. 그리하여 그 독일어에서는 먼 옛날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가 손자에게주던 구운 감자 냄새가 나는 것이다. 독일어의변모음<ä, ö, ü>은 오래된 친할머니의 냄새와 함께 모든 나이든 것들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프랑스어가 안개 낀 아침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하게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면, 독일어는 완숙한 현자의 사전을 낭독하는 것 같다.그러므로 동양의 경전을 옮길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유럽의 언어는 독일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를테면, 칼 융에게 리하르트 빌헬름이 보낸 <태을금화종지>의 독일어 번역.

 

 

<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하이데거. 그처럼 독일어는 자기순환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기에 철학에 적합한 언어라는 경하를 받기도 하였지만, 마치 크리스트교가 그러하듯이 자기완결성에 취해 때로는 다른 세계관을 경멸하기도 하였다. 마치 아돌프 히틀러가 오른손을 흔들며 행한 정치연설처럼.

 

 

그 렇다, 히틀러가 토로한 연설은 독일어가 가진 리듬의 극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의 자기완결성에 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마치 노인이 자신의 오래된 지혜를 맹신하듯이, 마치 오늘날 크리스트교도들이 성서의 일자일획에 대한 맹신으로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아 가듯이.

 

 

그러나 바로 그 시절 베를린의 테겔 육군형무소의 감방에서는 젊은 목사 하나가 다른 방식으로 독일어의 고결함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고백한다 : <사명을 위해서 복종하고 생명을 바칠 용의가 있다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선은 아니라는 점을. 이 용기가 <악을 위해서 오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철 학을 위한 언어인 독일어는 또한 히틀러의 정치연설에 마력적 힘을 부여하기도 한 것처럼, 자기완결성에 대한 자긍심이 자만으로 변하는 순간, 하나의 숭고한 가치관은 그 순간 예리한 비수가 되어 타인의 숨통을 끊어 놓는다. 나는 보았다 :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을 마무리하면서 이러한 종교들의 양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