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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도상에 있는 정거장

 훈련


그대가 자유를 찾아서 떠나려고 하거든

욕망과 그대의 지체가 그대를 이리저리 끌고다니지 않도록

먼저 그대의 감각과 영혼을 훈련하는 법을 배워라.

정신과 육체를 정결케 하고,

그대에게 정해진 목표를 찾아 거기에 복종하고 또 순종하라.

자유의 비밀을 경험한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오직 훈련에 의할 뿐이다.


행동


마음대로 행하지 말고, 정의를 단연 행하고,

가능성 속에서 동요하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대담하게 붙잡으라.

자유는 생각의 도피 속이 아니라, 오직 행동 안에만 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그대의 믿음만을 의지하여,

두려운 주저에서 뛰쳐나와 사건의 폭풍 속으로 나서라.

그리하면 자유는 그대의 혼을 환호하며 맞이할 것이다.


고난


놀라운 변화, 힘차고 살아 있는 손이 그대에게 연결되어 있다.

무력함과 고독 속에서 그대는 그대 행동의 종말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안심하고, 믿으며, 더 강한 손 안에서 위로받으며

조용히 만족한다.

오직 한 순간 동안 그대는 환희에 넘쳐 자유를 맛보았지만,

그대는 자유를 하나님에게 맡겼다. 그분이 자유를 영광스럽게

완성하시도록.




죽음


자, 이제 오너라, 영원한 자유에의 도상에 있는

최고의 축제인 죽음이여.

우리의 덧없는 육신과 현혹된 우리 영혼의

무거운 사슬과 장벽을 부수고,

이 세상에서는 보기를 꺼리는 것을 마침내 보기 위하여.

자유여,

우리는 오랫동안 훈련과 행동과 고난 속에서 그대를 찾았다.

그런데 이제 죽으면서 우리는 그대 자신을

하나님의 얼굴 속에서 본다.


- Widerstand und Ergebung, 184-185(고범서 역, 『옥중서간』, 231-232)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자유는 오직 훈련과 행동을 통하여 쟁취됩니다. 훈련 없는 자유는 욕망의 노예로 우리를 전락시키고, 행동 없는 자유는 소시민적 개인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참된 자유를 찾는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정결케 하고, 감각과 영혼을 훈련해야 합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행하는 데 있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사람은 고난을 받고, 무력함과 고독 속에서 지치게 되고, 감옥에 갇혀 자유를 잃게 됩니다. 이제 자유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세상은 죽음을 보기를 꺼립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자유의 끝이 아닙니다. 본회퍼는 죽음에서 참된 자유의 시작을 봅니다. 하나님의 얼굴 속에서 참된 자유를 찾은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마치 희미한 청동 거울을 보듯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자유의 도상에 있는 마지막 정거장입니다.

출처 : 채수일, "디트리히 본회퍼의 깊이와 넓이", <기독교 사상 2004년 8월호>


채수일 교수는 한신대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신학연구소장을 거쳐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 공동대

표를 맡고 있으며 한신대 교수로 있다. 저서로 <역사의 양심, 양심의 역사>, <21세기의

도전과 선교> 등이 있다.


글쓴이 / 채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