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
값싼 은혜는 싸구려 상품 같은 은혜이며, 싸구려 죄의 용서, 싸구려 위로, 싸구려 성만찬입니다. 교회의 무진장한 창고에서 생각도 없이, 끝도 없이 경박한 손으로 털어내는 은혜입니다. 가격도, 경비도 없는 은혜입니다. … 값싼 은혜는 교리, 원리, 체제로서의 은혜입니다. 일반적인 진리로서 죄의 용서이며, 기독교적인 신론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도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입니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 이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값비싼 은혜는 끊임없이 찾아야 할 복음이며, 기도해야 할 은사이며, 두드려야 할 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은혜가 우리를 제자의 길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죄를 저주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죄인을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에게도 값비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Nachfolge, 29-31(『나를 따르라』, 24-26)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자유는 싸구려 은혜가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의 질서를 추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싸구려 상품으로 전락시키거나, 기독교인이 자신을 경시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값싼 상품으로 퇴락시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현실입니다. 은혜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희생하여 구원하신 우리의 삶인데 어찌 우리가 함부로 우리 자신을 내던질 수 있겠습니까! 참회와 고백, 결단과 참여 없이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야말로 값비싼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헐값으로 바겐세일하거나 끼워 파는 백화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속적인 집단으로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교회가 참으로 값비싼 은혜를 선포할 때, 교회 자체도 값비싼 보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채수일, "디트리히 본회퍼의 깊이와 넓이", <기독교 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