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서른 중반이다. ‘어느덧’이라는 말에 서글픔이 밀려온다. ‘어느덧’ 혹은 ‘벌써’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쓰고 살았던지…. 밀도 있게 못 보냈던,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성글게 산 나날에 대한 회한이 낮게 깔려있지 않는가. 동시에 그 말을 빌어, 세월이 너무 급해서 쫓아갈 수 없었노라고 세월 탓만 늘어놓고 있다. 과속으로 질주한 적 한 번 없는 세월만 누명을 쓰니, 그 심정 얼마나 억울할 것인지….
   지난봄에 본 한 편의 영화는, 삼십대인 내게 삼십대의 이상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사실, 전에는 삼십대가 인생의 환절기처럼 모호하기 그지없었다. 좌충우돌 모험을 일삼기에는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알 굵은 열매를 따기에는 시기상조인, 그야말로 어정쩡한 시절 같았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삼십대의 정체성을 찾은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이제 깨달았다. 삼십대는 자기진실을 찾는 시기, 그 진실을 따라 용기 있게 걸어가는 시기라는 것을 말이다.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위해, 꽃샘추위가 제법 칼칼했던 이월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그 시기 미국 대륙은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다. 멜 깁슨이 제작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여파는 강진에 가까웠다. 영화 평은 팽팽할 정도로 극과 극이었다. 반유대주의니 여과 없는 잔인성을 들어 혹평하는가 하면, 성경에 가장 가까운 예수영화라는 극찬도 받았다. 그 때부터 나는 서고열람실을 드나들 듯 인터넷을 뒤지며, 그 영화에 대한 기사, 비평은 물론이고 TV와 라디오 인터뷰도 촘촘히 조사했다.
   드디어 사월 부활주간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볼 수 있었다. 그 영화는 내게 세 남자의 인생을 사유하게 했다. 서른셋의 나이에 십자가 사형 틀에서 죽음을 맞이한 역사적 예수와, 그 예수 역을 감동 깊게 연기한 서른세 살(촬영 당시)의 젊은 배우 짐 카비젤(Jim Caviezel), 그리고 서른아홉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반나치주의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hnhoeffer). 그들은 모두 삼십대였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렸다’는 교집합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삼십 대를 조명하리라.
   “다 이루었다.” 예수가 십자가 형틀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다 이루었다니… 이 세상 어느 누가 죽기 전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겠는가? 서른세 살의 사형수였던
예수, 그가 감히 말했다. 다 이루었다고. 광야의 예언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그는 더 이상 평범한 목수가 아니었다. 그 때부터의 삼 년 남짓한 삶은, 자기진실을 향한 장렬한 걸음이었다. 그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사형수로 죽어야 했다.
   “어느 누구도 이 짐(십자가)을 질 수 없어. 감히 아무도… 어느 누구도… 결코….”
   영화 속에 등장한 사탄의 존재가 예수에게 던졌던 냉소이다. 하지만 예수는 끝끝내 자신의 운명에 진실했다. 드디어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로마군인에게 체포된 그는, 유대교 지도자 가야바, 헤롯왕, 그리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지며 문초를 당한다. 이미 분별력을 잃은 군중들은 그를 죽이라고, 대신 강도 바라바를 살려달라고 전도된 탄원을 한다.
   그는 잔인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운명했다. 그것은 떠밀려 죽은 것도, 무능해서 죽은 것도 아니다. 살해당해야 했던 자신의 운명에 진실했기에 십자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다 이룬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젊은 신학자였던 그 역시,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린 젊은이였다.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1939년, 런던에 있던 그는 나치의 광기에 긁히고 있는 조국 독일로 돌아왔다. 곧 비밀기독교단체를 결사해 기독교 지도자들을 훈련시켰으며, 독일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을 탈출할 수 있게 도왔다. 자연히 그의 신변은 위태로워졌고, 더군다나 독일군대에 복무를 거부했기에 히틀러 정권의 가시가 되었다. 이에 주변 친구들이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독일에 남기로 용단을 내린다. 이유는 한 가지. 자신의 신앙에 진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일을 위해 거대한 악에 이끌리는 조국을 모른 채 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 양심으로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던 터였다.
   마침내 그는 악의 화신인 히틀러의 암살을 공모하다가, 1943년 4월 어느 날 게쉬타포에게 체포된다. 분노한 히틀러는 직접 회의를 소집해 젊은 신학자 본회퍼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감방 92호에 투옥된 서른아홉의 정치범. 그는 1945년 4월 9일, 사랑하는 약혼녀를 남겨둔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연합군이 도착하기 불과 삼일 전이었다. 그는 말했다.
   “십자가는 또한 타인의 죄를 대신 지고 가는 것이다.”

  
짐 카비젤. 그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씬 레드 라인, 엔젤 아이즈 등 굵직한 영화에 출연한 젊은 배우이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는 할리우드라는 감각적이고 상업적인 세계에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아니 그 세계에서 결코 흔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이다. 굵직한 주연급 배역도 잘 거절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의 연기철학이 집약된 어느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겠다.
   “저는 제가 원하는 역이 아닌, 하느님이 나에게 하길 원하는 역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있죠. 이 말은 악한 캐릭터는 무조건 거절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나리오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면 합니다. (배우로서)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카비젤의 이 원칙은 부모의 영향이 아닐까싶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섯 자녀들을 이렇게 가르치며 키웠습니다. 첫 번째가 하느님, 두 번째가 가족, 세 번째가 일이라고(God first, Family second, Business third).”
   그러한 종교적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날 멜 깁슨이 그에게 영화 한 편을 제안한다. 마침 멜 깁슨은 극중 예수처럼, 이름 첫 글자가 J.C(Jesus Christ)로 시작하는 서른세 살의 남자배우를 찾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도 절묘하게, 카비젤은 그 둘을 만족시켰다. 긴 대화 끝에 카비젤은 예수역을 수락하지만, 사뭇 걱정스러운지 멜 깁슨이 다음 날 전화를 했다.
   “짐, 자네가 무슨 일을 겪게 될 지 분명 알았으면 하네. 이 한 번의 예수역이 자네 연기인생을 끝장낼지도 모른다네. 다시는 영화배우로 일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하겠나?”
   사실 그렇다. 종교영화, 특히 예수영화의 예수역은 배우의 이미지를 너무도 고정시키기 때문에, 커리어 킬러(Carrier Killer, 배우경력을 죽이는)라 불릴 정도이다. 실력 있는 주연배우를 캐스팅하고도, 감독 멜 깁슨은 노파심에 진심 어린 충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카비젤의 결심은 확고했다.
   “누구나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영화가 당신과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면, 피하지 말고 지고 가야지요.”
   이렇게 서른세 살의 카비젤은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빠뜨렸다. 커리어 킬러가 될지 모를 예수 역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이미 연기력을 인정받아 할리우드에서도 미래가 창창한 그가, 보통사람들은 이해 못할 바보스런(?) 용단을 내린 것이다. 애써 쌓은 연기인생이 끝난다 할지라도, 스크린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할지라도,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십자가를 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영화 제목(그리스도의 수난)처럼, 예수 역을 한 카비젤에게 촬영 내내 수난이 이어진다. 아랍어, 라틴어, 히브리어로 된 대사 외우기, 새벽 두 시부터 아침 열 시까지 장장 여덟 시간에 걸쳐 불편한 자세로 받아야했던 메이크업, 산상수훈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머리에 벼락을 맞는가 하면, 로마 군인 역을 한 배우의 실수로 고문기구에 실제로 맞아 깊은 상처가 나기도 했다. 십자가 장면만 무려 5주에 걸쳐 촬영되었는데, 이태리의 겨울은 거의 맨몸차림으로 십자가에 달려 있기에는 너무도 추웠다. 카비젤은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십자가에 달린 불편한 자세 때문에 어깨뼈가 탈골될 지경에 이른다. 심지어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반유대주의 영화라는 오명을 쓰며, 멜 깁슨과 함께 신변의 위협까지 받았다.
   하지만 영화는 완성되었고, 일부 아랍권에까지 이 영화가 들어갈 정도로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줄 알았던 젊은 배우 짐 카비젤, 그의 삼십대가 무척 아름답다.*

 

출처 - 사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