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그 때 묻은 교복이 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위로해야 할 우리 전체의 일부인가?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인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류관순 교복을 입은 한 아이를,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버렸다.
이 가엾은 아이는 처음 얼마간은 뜨거운 교실에서 정신을 못 차린 채 얼마를 버티고,
또 정신을 차리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또 의지와 자존심으로 얼마를 보내고,
마침내 금이 간 쪽박은 뜨거운 열기에 물기가 증발되어 말라 비틀어져서 두 쪽이 난다.
...
내가 일하는 학교는 학생이 한 반에 37명 쯤 되는 엘리트를 만드는 곳이지.
지금은 중간고사가 끝났지만 조금 있으면 다시 춘추복을 입고 기말고사를 준비할 거야.
아이들 모두가 여자로서, 평균 연령 17~19세 정도가 공부를 하는 학생이고,
보통 아침 등교는 7시 50분까지. 하교는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야.
어떤가?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여기에 문제가 있어.
시간을 따져보세. 하루에 몇 시간인가? 1일 14시간이야. 어떻게 어린 학생들이 이런 장시간을 견뎌낼까? 남자들보다 몸도 약하고, 어른들보다 마음도 약한 여자 아이들이, 더욱이 입시공부라면 노동 중에서 제일 고된 노동이잖아. 정신과 육체를 조금이라도 분리시키면 공부가 안되지. 공사판 인부들은 육체적 힘을 요구하고, 사무원은 정신적 노동을 요구하지만, 선생님은 양자를 다 요구하거든. 그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 14시간의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워.
아무리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도, 그런 애들도 체력의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교사로서 이 아이들과 눈만 뜨면 같이 지내거든. 정말 여간 고역이 아니야.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 된 어린 아이가 아침부터 하교 때까지 그 힘에 겨운 학습량을 빨리 제 시간에 못해서 꾸중을 듣고, 저녁시간이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밥만 먹기에도 빠듯해서 먹다가 체할 것 같아.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밖에서 한창 자신의 삶으로 실험하며 놀 나이에, 입시경쟁이라는 없어도 될 악마는 이 어린 동심에게 너무나 가혹한 매질을 하고 있어.
- 2008년 스승의 날,
전태일 평전 읽다가1970년의 인간 물질화와 2010년의 인간 물질화를 생각하며 쓴다.
==================================================================================================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敗者)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중략)...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이 가엾은 인간은 처음 얼마간은 뜨거운 길바닥에서 정신을 못 차린 채로 얼마를 지내고, 또 정신을 차리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또 의지와 자존심으로 얼마를 보내고, 마침내 금이 간 쪽박은 뜨거운 열기에 물기가 증발되어 말라 비틀어져서 두 쪽이 난다.
....(중략)...
내가 일하던 공장은 종업원이 30여 명쯤 되는 어린아이들 잠바를 만드는 곳이었다네. 지금은 가을잠바를 만들지만 조금 있으면 동복용으로 잠바 속에다 털을 넣고 스펀지를 넣을 걸세.
종업원 대부분이 여자로서 평균 연령 19~20세 정도가 미싱을 하는 사람들이고, 14~18세가 시다를 하는 사람들일세. 보통 아침 출근은 8시 반 정도. 퇴근은 오후 10시부터 11시 반 사이일세. 어떤가?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여기에 문제가 있네.
시간을 따져보세. 하루에 몇 시간인가? 1일 14시간일세. 어떻게 어린 시다공들이 이런 장시간을 견뎌내겠는가? 연령이 많은 미싱공들도 마찬가지일세. 남자들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이, 더구나 재봉일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고된 노동일세. 정신과 육체를 조금이라도 분리시키면 작업이 안되네. 공사판 인부들은 육체적 힘을 요구하고 사무원은 정신적 노동을 요구하지만 재봉사들은 양자를 다 요구하거든. 그 많은 먼지 속에서 하루 14시간의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애처롭네.
...(중략)...
원섭아! 나는 재단사로서 이 사람들과 눈만 뜨면 같이 지내거든. 정말 여간 고역이 아니야. 이제 겨우 열네 살이 된 어린아이가 아침부터 퇴근시간까지 그 힘에 겨운 작업량을 빨리 제 시간에 못해서 상관인 재봉사들에게 꾸중을 듣고, 점심시간이면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는데 코끼리가 비스킷을 먹는 정도의 양밖에 안될 거야.
부잣집 자녀들 같으면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앞에서 한창 재롱이나 떨 나이에, 생존경쟁이라는 없어도 될 악마는 이 어린 동심에게 너무나 가혹한 매질을 하고 있네.
- 조영래,≪전태일평전≫,돌베개,2001,195~198쪽.
